SUNMIN LEE

함께 사는 법, 홀로 꿈꾸는 법-TwinsⅠ

신수진 (사진심리학, 연세대학교 연구교수)

나의 삶은 내가 선택하는 것인가 혹은 누군가로부터 내게 주어지는 것인가. 태어남에서부터 온전히 혼자일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 늘 지니고 가야할 의문이다. 새마을 운동 세대였던 우리의 부모님들은 건강한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란 믿음을 대물림해 주셨다. 하지만 그 믿음과 함께 주어진 상대적인 풍요로움은 스스로에 대한 피할 수 없는 번민과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생존’이 아닌 ‘더 나은 삶’을 위한 노력은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있어 까다로운 숙제와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의 중간 세대는 어떤 가치와 판단기준으로 삶을 꾸려갈 것인가에 대한 정답이 없는 질문과 반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혼자 풀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우리는 주변을 둘러본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나 내가 닮고 싶은 사람들, 즉 준거 집단(reference group)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관찰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이 때 준거 집단을 고르는 가장 고전적인 기준은 근접성이다. 즉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비슷하게 행동함으로써 갈등의 심리적인 비용을 줄이는 방책을 쓰는 것이다. 주거 지역에 근거한 집단 동질성은 최근 대도시의 노후 시설과 과밀화로 인하여 급속히 형성, 발전하고 있는 주변 신도시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신도시의 거주자들의 삶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그들이 어디로부터 왔느냐보다 현재 그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신도시는 운명처럼 주어진 곳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 경제 문화적 여건과 욕구에 따라 스스로 선택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여자의 집 Ⅱ(2004)>을 통해서 한국의 가족 안에서 여성의 역할과 비중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는 이선민은, 이번 전시에선 신도시에 거주하는 젊은 엄마와 그녀들의 딸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표면적으로 사진에 등장하는 것들은 소위 한국 중산층의 안정된 생활이다. 자녀 교육에 몰두하고 깔끔하게 집안을 단장하며 자신의 외모를 바지런히 가꾸는 주부와 그녀들의 세심한 손길이 느껴지는 집안 풍경,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이루어내는 조화의 중심에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사진가의 눈에 붙잡힌 여자 아이들과 엄마는 무표정하게 경직되어 있으며, 어떠한 정서적 표현도 시도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입은 옷과 장신구, 유럽풍 혹은 디즈니풍의 가구, 책장을 빼곡히 메운 교육용 책자 등이 그들의 존재를 설명해줄 뿐이다. 사진의 등장인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온갖 장치들의 유사성은 그들을 후천적인 쌍둥이들로 보이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세심하게 선별된 것이다.

이선민은 대형 카메라와 충분히 밝은 조명을 설치하여 이용함으로써 집안의 공간감을 최소화하고 구석구석에 놓여진 작은 물건에까지도 공평하게 눈이 가도록 만들었다. 그로 인해 그 집의 안주인과 그녀의 가장 소중한 분신인 아이들은 집을 완전한 삶의 터전으로 장악한 주인공으로 보이기보단 잘 갖추어진 집의 일부처럼 그려졌다. 게다가 그 집은 한국식 마루바닥과 백설 공주의 분홍 성(城), 영국식 소파와 삼성 에어컨이 함께하는 기묘한 조합을 보여준다. 그것은 쉬 드러나진 않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는 갈등의 뿌리를 뽑아 올리는 시도이며, 아무리 대다수의 사람들에 기대어 눙쳐보려고 해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욕망 같은 것의 표현이기도 하다. 자신이 분당에 거주하는 두 아이 엄마인 30대 후반의 작가는 이 사진들을 통해 그녀가 선택했거나 혹은 그녀의 준거집단이 취하고 있는 삶의 방식에 내재된 갈등에 대해 고백한다. 오늘, 한국의 중산층이며 중간세대인 그녀들은 자유와 구속의 사이, 소비와 절제의 사이, 그리고 가족과 개인 사이에서 갈등한다.

아이들의 교육은 언제나 그녀들의 삶의 중심에 있다. 가족 공동체를 운용하는 원동력은 경제력을 제공하는 가장으로부터 이탈하여 자녀들에게로 옮겨진지 오래이다. 부부 중심의 핵가족에서 아이 중심의 탈가족으로 변이가 이루어지면서, 주부의 생활은 남편으로부터 자유로운 만큼 아이들에게 철저히 구속되어 있다. 또한 그녀들은 계획된 도시 환경이 제공하는 편이성과 안락감 속에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소비의 주체로 살아간다. 생산과 소비가 기능적으로 분리된 가족 집단 내에서 그녀들의 소비는 자신의 손으로 이루어지지만 자신만을 위한 것이 되긴 어렵다. 소비에 있어서도 아이들은 중요한 매개이자 명목상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녀들에게 무절제한 소비란 죄악과도 같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그녀들은 가족의 틀을 온전히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꿈꾸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꿈일 뿐 그녀들의 현실은 함부로 벗어던지기에는 여전히 근사한 둥지인 것이다.

사진가 이선민이 보여주는 신도시의 가정은 누군가에게는 동경의 대상이다. 한국 사회에서 그 집단으로의 진입을 원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생활 방식에 대한 가치 판단은 어쩌면 보는 사람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무표정하게 굳은 얼굴의 주인공이 되고 싶진 않을 것이다. 이 사진들로 작가는 담담하고 무심한 듯한 어조로 그녀들이 진심으로 웃을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자고 말을 붙인다. 아파트와 백화점과 학원가가 아닌 그녀들 자신만의 삶의 터전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찾아보자고 옆구리를 꾹꾹 찌른다. 답답하게 꽉 막힌 듯한 공간에다 아이들이 자라면 곧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성을 쌓아 넣는 대신에 물질 이외의 것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줄 나만의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떨지 묻는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모든 가족 구성원이 인격적으로 교감할 수 있고 내 아이에게 그 애만의 얼굴을 찾아줄 수 있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이 집의 안주인이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느냐며 슬그머니 꿈같은 이야기를 던져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