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MIN LEE

이선민과의 대화

최건수

Q1 : 당신은 학부에서 한문을 전공하셨습니다. 그리고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전공을 사진으로 바꾸셨지요? 이렇게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까닭은 무엇입니까?
A1 : 지금 사진을 하고 있지 않다면 한문 선생님이 되어있을 겁니다. 대학교 4학년 때 교생 실습을 나가 연구수업을 하게 되었는데 일주일을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지루하게 느껴졌어요. 이런 식으로 일년 또 몇 십년을 반복할 자신이 없어지더군요. 학교로 돌아와 교직을 포기하고 카메라를 쥐었지요. 마음에서 소용돌이치는 답이 없는 얘기들을 밖으로 끌어내고 싶었어요. 제가 진학한 홍익대학교에는 저처럼 전공을 바뀌어 진학한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비록 기술적인 면이나 감각이 떨어질지언정 사진에 대한 열의나 예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람들이었죠. 저 역시 많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 속에 있는 의문들을 맘껏 표현하고 빠져보았던 시기였습니다.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시기였다고 할까요?

Q2 : 96년 첫 개인전(황금 투구)을 보고 당신에게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20대 중반 작업 이기에 여러 가지 미숙함이 엿보이기는 했으나 가능성을 보여 준 전시회라고 기억합니 다. 그로부터 십년이 지났고 기대한대로 2004년『여자의 집』과 2006년『twins』에 서 좋은 작업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여성 사진가들이 결혼 이후 작업을 진 행하지 못한 경우를 종종 보아 온 저로서는 당신이 결혼이라는 어려움 속에서 좋은 작업을 진행하는 저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무엇이 작업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건가요?
A2 : 저에게 황금투구 작업은 아련한 아픔과 애정를 동시에 일으키는 작업입니다. 첫 번째 것에 대한 향수일수도 있겠지요.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한번에 쏟아서 이후로 2년 동안 카메라를 잡지 않았어요. 너무 고단하고 그 애쓴 만큼의 반향이 만족스럽지 않았죠. 황금투구전을 한 그해 겨울에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으면서 2년여의 시간이 지나자 다시 ‘이게 뭐지?’ 하는 의문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할 말이 생긴 거죠. 1999년 큰아이가 9개월 때로 정확히 기억합니다. 아이가 보행기를 타고 엄마인 저를 바라보는 사진이었죠. 요즘에 그 사진을 보면 그때는 이랬지 하면서 웃지만 당시엔 제 자아와 엄마로서의 역할 속에서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다시 카메라를 잡으며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 손만 뻗으면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하며 둘째, 나뿐만 아니라 사회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작업이어야 한다는 것. 셋째, 앞으로 10년 이상을 지속할 수 있는 주제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가지 원칙은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엄마로서의 제 환경을 충분히 고려한 것이며 또 황금투구 전시의 교훈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기도 합니다. 의상제작과 모델 섭외, 무대 제작 등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는 작업은 제 여건상 긴 숨을 가지고 지속할 수 없다는 생각과 최소 10년 이상 계속 할 수 있는 울림이 큰 주제여야 한다는 생각이 합쳐진 거죠. 여자의 집 작업이 이런 전제에 충실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카메라는 저 한 켠에 먼지를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Q3 : 최근 젊은 사진가 사이에 우려 할 만큼 독일의 유형학적 사진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언뜻 당신도 그런 조류로부터 자유스럽지 않은가하는 생각도 했지요. 이러한 사진의 흐름을 어떻게 받아드리십니까? 그리고 작업 속에 그런 요소를 느껴본 적은 없으신지 요?
A3 : 저도 젊은 작가의 사진들을 비슷한 부류로 묶어서 감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정한 틀 안에서 작업을 진행하는 일은 작가 모두 한 두 번씩은 경험해 보았던 문제일겁니다. 저 역시 초기의 여자의 집 시리즈는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방형 포맷 속에 어지러진 물건들과 권태로운 엄마와 아이가 있죠. 제 사진의 모델이 되었던 대상들의 일상이 오히려 더 유형학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웃음). 당시 사용하던 핫셀의 정방형 포맷은 이런 모델과 작가의 권태로움을 완벽한 정사각형의 구도 안에서 보여주었고, 어디로든 굴러갈 수 있는 정사각형은 이들의 심리 상태와 잘 들어맞았습니다. 사진의 형식과 내용은 별개의 것으로 떨어져 읽혀져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도움을 주면서 상승하도록 선택 돼야 하지 않을까요? 충분히 그려보고 실험해 보면서 말이죠.

Q4 : 하나하나의 시리즈로 화제를 바꾸기 전에 당신의 10년 작업을 묶을 수 있는 하 나의 단어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저는‘가족’이라고 보고 있는데 동의 하 시는지요? 1회전이 '아버지‘에 대한 문제, 2회전이 ’가족 속에서 여자들의 삶‘에 대한 문제, 3회전이‘핵가족화 된 중산층 이상의 젊은 부부 속에서 양육되어 지는 아이들’에 대한 초점의 같은 것 모두가 통시적으로 가족의 변천사 또는 가족 내에서 권력의 이동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A4 : 예. 동의합니다. 황금투구 작업은 실은 저의 아버지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었어요. 저의 아버지는 경상도 부산 출신으로 자수성가를 하신 가부장적인 분이십니다.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면서도 여전히 두려웠던 26살의 감상이 권력의 화신 시이저를 연출하게 한 것이지요. 이후 결혼을 하고 결혼이라는 제도는 가부장제를 더 깊이 느끼게 했고 내가 여자구나 하는 각인을 시켜주었어요. 인격과 학력에 상관없이 그저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결혼생활의 일상이 여자의 집 작업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Twins 작업은 이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의 가족에 대한 접근입니다. 이상하게도 아이와 엄마의 관계는 가부장제나 평등의 문제를 비겨가면서 엄마와 동일시되는 걸 느꼈어요. 아이와 엄마가 분리가 안 되고 아이의 인생에 너무 깊이 개입하는 엄마들을 보게 됐죠. 표면적으로는 핵가족화 된 가정에서 엄마의 권력이 확대된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며, 내적으로는 엄마라는 여자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아이의 방에 들어서면 금방 엄마의 취향을 알 수 있고, 이러한 가정 내에서의 여자의 권력은 실감을 넘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Twins 시리즈는 동시대의 엄마들에게 ‘Who are you?’라는 질문을 던진 작업입니다.

Q5 : 그럼『황금 투구』로 화제를 바꾸어 볼까요? 이 시리즈는 형식적으로 마치 연극무대에 서 촬영한 초상사진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르네 마그리트나 데 키리코의 그림을 배 경으로 한 로마 황제의 복장을 한 인물사진은 배경이나 인물의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유머가 느껴지고 한편으론 키치적으로 보입니다. 세련되지 못한 배경과 의상, 분장 같 은 문제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이 어설픈 연출이 이 사진들을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라고 봅니다. 이 시리즈를 기획한 동기나 이 시리즈를 통해서 드러내고 싶 은 것은 무엇일까요?
A5 : 지금 이 작업을 다시 하라고 하면 제 생각을 더 명료히 표현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시의 저의 욕심과 한계가 그대로 보여 쑥스러운 작업이기도 하고요. 황금투구 작업에는 세상의 모든 권력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파우스트가 지식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죽음 앞에서 후회하듯이 말이죠. 지금 그때와 생각이 바뀐 부분이 있다면 영혼 없는 권력의 추구는 슬프다는 것입니다. 가까이에서 일례로 제가 작업하는 것 역시 아이들과 가정을 뒤로하고 작업에만 매진한다고 그 작업이 저에게 위로가 되지 못 할 거라는 겁니다. 작가의 환경과 역량을 작업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은 어쩌면 황금투구 작업에 대한 저의 생각과 다르지 않을 것 같네요.

Q6 : 왜 아버지를 권력의 문제와 연결하여 생각하셨지요?
A6 : 유년시절부터 20대에 이르기까지 아버지는 저에게 권력의 상징이었죠. 아버지가 식탁에 앉아 수저를 드셔야 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고, 밤이 늦어도 아버지가 귀가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죠. 지금은 황당한 얘기지만요. 제가 경험한 권력은 그런 것이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대통령이 저격당하고 군부의 쿠테타가 일어나고 대학 생활이 데모로 어지러웠던 시대적 상황에서도 제에겐 아버지의 권력이 대통령보다 강하게 느껴졌죠. 그렇게 거시적인 권력의 문제보다도 가까이에서 매일 부딪쳐야 하는 소소한 문제가 더 풀기 어려운 숙제입니다. 황금투구는 제가 아버지를 한 발 떨어져 바라보며 나름대로 화해한 성인식 같은 거라고 할까요?

Q7 : 『여자의 집』으로 화제를 바꾸어 볼까요? 이 시리즈는 제사나 명절 같은 가족행사에 참여한 구성원들의 다양한 표정을 통해서 이들의 심리와 오늘날의 가족에 대한 의미 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정에서 여성의 위치와 역 할에 대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 듯싶은데, 당신의 제작 의도는 어떻습니까?
A7 : 어쩌면 여자의 집에서 보여지는 명절이나 제사 풍경은 ‘이거 좀 잘못된 거 아냐?’보다는 ‘이거 이런 거 말고 좀더 좋은 거 없어?’하는 마음이 시작일겁니다. 많은 여자들이 가부장제의 문제점 때문에 가정을 버리는 선택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힘들게 화가 쌓일 뿐이지요. 제사나 음식 만드는 사진은 보기도 싫다는 여자도 있었습니다. 그 부분은 본인의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부분이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이러한 식으로는 가족의 끈이 오래가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무에 가려진 가족에 대한 애정을 끌어내는 방법을 찾아야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만들어서 같이 앉아 일상을 나누는 문화의 절심함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Q8 : 이 사진들의 묘미는 인물의 시선처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촬영 시에 어긋나는 시선이 주는 사회적 의미를 의식하며 촬영하셨는지요?
A8 : 결혼생활은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며 타협을 찾아가는 격전의 현장이 아닐까요?(웃음) 솔직히 저도 명절이 되면 음식에 애들 치다꺼리까지 쉴 틈이 없는 며느리의 입장입니다.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며 일을 하지만 마음이 그곳에 있는 건 아니지요. 서로 한자리에 모여 있지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가족구성원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져버리지 못하는 가족이란 틀이 제 사진에선 시선의 어긋남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9 : 『여자의 집』에서 보여 지는 여성은 가정의 중심적 역할로부터 물러나 있다는 인상입 니다. 사진에 찍혀있는 여성들은 마치 주변인물로 느껴지고 있는 것이지요. 반면에 『twins』의 경우는 전혀 다른 느낌이지요. 대부분의 사진들이 분당에 사는 중산층 이 상의 가정을 모델로 했는데 이 시리즈의 경우는 비록 등장인물이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배경에 있는 젊고 힘 있는 엄마가 느껴지는 것이지요. 가정의 권력이 부권에서 모권으 로 넘어간 낌새 같은 것도 느껴지고요. 그래서 저는『twins』란 제목이 보여주는 이 미지보다도 가정에서의 여성의 역할 변경이라든가, 힘의 이동 같은 것에 더 주목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경우도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부들과 거의 같은 세대의 주부이고 또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이기도 합니다. 가정에서의 여성의 위상 변화에 대 한 견해를 듣고 싶군요.
A9 : 대가족 구조 안에서 젊은 엄마는 체제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명절이나 제사 때 여자들의 역할은 전통적 가부장제를 얼마나 잘 따르냐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죠. 하지만 육아의 문제는 그렇지가 않지요. 전통적으로 한국의 가정은 육아를 엄마에게 맡겨왔고 아이에 대한 엄마의 선택도 독자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이러한 가족 내의 분위기는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었을 때 모권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겠지요. 우스갯소리지만 저도 6살 난 아들에게 분홍색 옷도 입히고 운동화도 빨게 하곤 합니다. 다음세대의 아이들은 가부장적 원칙들로부터 훨씬 자유로워 질 것이며 이는 여성과 함께 남성의 위상도 같이 변화 시키겠지요. 이러한 힘의 이동은 권력의 크기만큼의 책임을 나누어 가지는 노력 속에서 건강한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Q10 : 너무 이야기가 딱딱한 느낌입니다. 분위기를 바꿔 볼까요? 최근 사진은 밝아지고 화 면은 엄격한 통제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중형에서 대형 카메라로 장비를 바꾸어서 변화된 것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으신지요?
A10 : Twins의 배경은 중산층의 예쁜 아이 방 입니다. 초기에는 허니콤을 이용한 명암차가 많이 나는 조명을 사용하였는데 그러다보니 엄마의 손길이 닿은 구석구석의 모습이 덜 보여지고 감상적인 느낌이 들더군요. 레이스 커튼과 벽에 걸린 소품들도 엄마를 대변하며 화면 안으로 들여오기 위해서 밝은 조명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중형에서 대형 카메라로의 전환도 전작과 분위기가 틀려진 또 다른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여자의 집 작업을 끝내고 작업을 구상하며 카메라와 조명등의 장비를 바뀌는 문제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찍고자 하는 대상과 카메라 웍이 조화를 이루는 문제 때문이었죠. 여러 장단점을 비교한 끝에 실내 인테리어의 형태를 곧고 차갑게 표현할 수 있는 대형카메라를 선택했습니다. 대상을 휘어진 선이나 극적인 조명에 가리지 않고 되도록 타인의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보고자한 결과물로 생각됩니다.

Q11 : 끝으로 여성문제. 특히 한국가정을 중심으로 여성들의 일상과 변화를 예리하게 카메 라에 담고 있는 당신에 주목하면서 지금은 당신의 카메라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소개 해 주시기 바랍니다.
A11 : 올 한 해 동안 Twins 작업과 함께 강원도 도계 지역의 가족을 촬영해 왔습니다. 분당과 도계라는 특정 지역을 집중작업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지역의 사회적 문화적 특성이 사진과 어우러지더군요. 개인과 개인이 만난 가족은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흐름 속에 존재한다는 당연한 명제를 몸으로 실감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강원도의 수려한 능선 앞에 선 백발의 아버지와 자식들. 철로 옆 사택에서 부인과 나란히 선 아저씨. 카메라를 응시하는 할아버지의 당당한 시선에 압도당하기도 하고, 아버지 멀찍이 서 있는 어머니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도계 작업에서는 이상하게도 백발성성한 부모님의 모습에 눈길이 갔습니다. 부모님과 저의 유년시절이 그려지기도 하고요. 아이와 나만을 바라보던 시선이 부모님에게도 미치는 걸 알 수 있었죠.
이제 가족을 주제 삼아 작업한지 8년째입니다. 첫 개인전부터 그간의 작업을 돌아보니 지금 제가 서있는 곳과 가야할 방향이 많이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앞으로의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되겠네요. 유익한 인터뷰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