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MIN LEE

순환과 성장의 과정

이선민

4년 전 어느 날, 문득 11살이 된 딸과 함께 지리산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을 벗어나 같은 목표를 향해 땀을 흘리고, 운해가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산줄기 능선에 서 보고 싶었다. 아이와 함께 설산에서 모닥불을 지피며 야영을 하고, 자전거를 차에 싣고 밤이 되면 밤하늘 무수한 별을 함께 바라보고 싶었다. 그렇게 <트윈스>의 두 번째 작업이 시작되었다. 아이의 방에 비추인 욕망과 반복되는 일상을 뒤로 하고 아름다운 풍경과 신선한 공기가 있는 넓은 자연으로 <트윈스> 시리즈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트윈스>가 찾아간 자연에는 내 20대의 젊은 기억과 로망이 담겨져 있다. <트윈스>의 시선은 자연으로 향했던 그 시절의 기억과 안식의 시간을 추적한다. 젊은 시절 바라보던 자연은 크고 벅찼다. 숲의 향기만으로도 안식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자연을 회상하며 <트윈스>의 모델이 된 가족들은 해 지는 바닷가와 단풍 물든 숲과 새벽 산을 혼자가 아닌 아들, 딸과 함께 찾았다.

카메라가 흔들리고 조명이 돌아갈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던 대천 바닷가에서의 촬영이 떠오른다. 거센 바람과 추위에도 불구하고 일몰의 바닷가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나는 그 일몰을 등지고 선 아버지와 아들에게 카메라를 힘 있게 바라볼 것을 요구했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이들 부자에게서 등지고 있는 일몰의 바닷가 풍경처럼 아름답고도 당당한 모습을 보고 싶었고, 그것은 또한 나의 젊은 기억과 로망이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사람에게도 재현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작가의 바람이자 욕망이었을 것이다.

아이의 방에 이어, 산으로 바다로 농장으로 향하던 <트윈스>의 시선은 6년여의 긴 여행을 끝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거실과 아이의 방과 책상 위에 내 욕망은 소복히 쌓여 있고, 언제 그랬냐는 듯 분주한 움직임과 크고 작은 소리들로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문득 문득 창가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며 아름다웠던 일몰 풍경과 같은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섰던 그들의 몸짓과 몸을 밀어버릴 듯했던 바람을 기억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큰 배낭을 메고 지리산에 오르던 20대의 나는 이제 40대가 되었다. 작년 가을 <여자의 집>의 모티브였던 아빠가 하늘로 돌아가셨고, 딸 자윤이는 중학생이 되었다. 일몰의 바닷가와 단풍진 숲은 여전하지만 나와 내 가족의 존재와 욕망은 잉태되고 성장하고 스러짐을 반복할 것이다. <트윈스> 시리즈는 이러한 순환과 성장의 과정 속에서 나와 내 가족이 서 있는 그곳을 생각한다.

신도시 분당의 중산층 가정을 모델로 아이의 방에 드리운 엄마의 욕망에 대하여 이야기했던 <트윈스>의 첫 작업을 시작으로, 2005년부터 2010년까지의 짧지 않은 여정을 함께 해 준 고마웠던 이름들을 떠올린다. 신병태, 장영수, 박홍순, 김동욱, 강재구, 김경열, 왕규정, 이선정, 이성현, 임낙권, 정철, 황호석, 이현숙, 김수미, 김영미. 작가의 성긴 열정에 흔쾌히 응해 준 모든 모델 가족들과 엄마와 아내의 부재를 감당해 준 자윤 성우와 최인구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이 모든 과정을 열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