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MIN LEE

다문화 시대의 우리 - Translocating Woman” (대륙을 횡단하는 여성)

걸으면서 꿈꾸는 자

인류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노마드들이 산맥과 바다를 넘어 이동하고 정주하고 또 다시 떠나갔다. 지구상에서 인류가 생존하기 시작한 이후로 지금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와 목적을 담보하며 국경을 넘은 이주의 역사가 진행되어 왔으며 이러한 인류의 이동는 물리적인 몸의 이동과 함께 필연적으로 문화의 이동을 수반하여 왔다. 그것이 척박한 환경에서든지 부유한 환경에서부터이든지 인간의 이동은 새로운 문화의 창출을 동반하며 이주자와 이들을 맞이한 정주자 모두에게 새로운 형태의 정체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이주의 역사는 1세기 전 작은 사건으로 시작되어 지금은 조선족, 러시아 고려인(까레이스키), 재일교포로 불리는 많은 코리안 디아스포라 그룹을 형성하고 있으며, 하와이의 사탕수수농장에서 힘겹게 이주생활을 시작한 코리안 아메리카 디아스포라들은 이제 LA에 코리아 타운을 형성하고 미국 시민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며 단단한 정주의 틀을 확립한 현실에 있다.

2012년, 이렇듯 세계 곳곳으로 이주자들을 방출했던 한국은 이제 반대로 한국으로 입국하는 수많은 이주자들을 맞이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중국, 베트남, 필리핀, 몽골 ,캄보디아 등 아시아 대륙에서 수많은 이주의 행렬이 한국으로 향하는 새로운 현실 앞에서 40여 년 간 한국에서 정주해 온 작가의 시선은 이러한 변화의 물결 중 특히 결혼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한국에 입국한 동남아시아 여성의 발자취와 한국 남자와 결혼한 아시아 여성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성남이라는 도시에 집중해서 이주의 흔적을 추적하였다.

성남은 1970년대 초 수도인 서울의 인구 분산 정책의 일환으로 세워진 위성도시로 결혼을 통해 한국에 정착한 아시아 여성들의 숫자가 빠르게 늘어가고 있는 지역이다. 지정학적으로는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위성도시이며 90년대 초 대단위 아파트촌으로 형성된 계획 도시 분당과 나란히 붙어 위치하고 있다. 성남보다 20년 늦게 계획 개발된 분당의 아파트 단지와 넓은 도로망과는 대조적으로 작은 다세대 주택과 언덕, 좁은 골목과 구불구불한 도로들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러한 성남 지역을 위시하여 한국으로 이주한 아시아의 여성 결혼 이민자들을 ‘Translocated woman-대륙을 횡단하는 여성’이라 명명하고 촬영을 시작하였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 국경을 넘고 대륙을 횡단해 홀로 낯선 도시에 도착한 이들. 미대륙 최초의 대륙 횡단 철도가 아메리카 대륙 동서를 관통한 이후로 수많은 노마드들이 비전과 도전을 품고 열차와 배에 올라 대륙과 해양을 횡단하여 새 땅으로 이동하였다. 이후로 200여년이 흐른 지금 많은 아시아의 여성들이 홀로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이국의 땅, 한국에 도착하였다. 일세기 전 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이 낯선 땅에서 온 몸으로 맞닥뜨린 충돌과 생존의 역사가 이 여성들의 삶 속에서 다시 작동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떠나는 자의 손에 들린 가방과 그의 가슴에 담긴 소망과 두려움을 시작점 삼아 40여 년 간 한국에 정주해온 사진가가 멀리 국경을 넘어 한국 땅에 이르른 세 명의 아시아 여자들을 방문한다. 그들이 머무는 공간에 담긴 보여지는 이야기와 함께 그들의 가슴에 담긴 보이지 않는 여러 감정의 파편들을 사진으로 형상화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사진적 행위는 아시아를 위시하여 세계적으로 가속화되는 인구이동 추세 속에서 정주를 기반하고 있는 사진가의 노마드적 욕망의 표현이자 이들과의 소통을 제안하는 제스츄어이며 또한 나와 그녀를 넘어 세계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행위가 되기도 할 것이다.

한 알의 작은 씨앗

어느 일요일 오후 6개월 전에 한국에 입국해 성남 태평동에 거주하고 있는 친따이 깜뚜(베트남, 22세)를 만났다. 그녀의 고향은 베트남 하노이로 5년 전 친정언니가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고 한다. 언니의 아들처럼 예쁜 아기도 빨리 갖고 싶고 한국말과 음식도 더 잘 배우고 싶다며 아직 서툰 한국말로 자신의 위시리스트를 설명하는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왠지 모를 울림으로 내게 전달되었다. 그녀의 소망이 베란다 아래 무수히 켜진 불빛처럼 작게 떨리며 빛나는 막 심겨진 새싹처럼 여리게 다가왔다.

영세 호앙(캄보디아, 25세)은 보름 후면 아이를 출산한다. 호앙의 고향은 캄보디아 프라이베라는 마을이다. 이 곳은 물 부족과 전쟁으로 가난이 극심한 곳이라 한다. 호앙은 아침 7시부터 일하러 나가서 밤 8시가 넘어 들어오는 남편이 너무 안됐다며 자기가 빨리 아이를 키워놓고 일을 시작해서 남편을 쉬게 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고난 속에서 자라난 강인함인지 노동에 대한 문화적 차이인지 여하튼 호앙의 선량한 눈망울과 다부진 태도에 남편이 복이 많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캄보디아에서 들고 온 물건들은 너무나 단출했다. 캄보디아 국가가 발행한 결혼 증명서와 여권, 비행기 티켓, 캄보디아 주민증과 전통 치마 한 벌, 친정엄마가 주었다는 1달러 지폐 서 너 장과 캄보디아 지폐 몇 장이 전부다. 호앙은 소지품 중엔 아직 한국 주민등록증이 없다. 이제 곧 아이를 낳으면 한국 국적이 취득된다고 한다. 그녀가 일 년 전 한국에 홀로 입국할 때 사용했던 비행기 티켓에는 어떤 전화번호가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한국에서 연락처를 알고 있는 단 한 사람인 남편의 전화번호였다. 그 숫자 하나하나에 두렵고도 절박했을 공항에서의 호앙의 심정이 묵직하게 사진가의 가슴으로 전해졌다.

조지타(필리핀,37세)의 한국이름은 김현정이다. 한국에 입국한지 10년째인 그녀는 다문화 강사와 원어민 영어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대화 중 성숙한 멘트로 사진가를 감동시켰다.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성남 지역의 다문화센터에서 방과 후에 두 아이를 무료로 양육받고 있기에 자신도 센터에 있는 아이들에게 필리핀 말과 영어 두 가지의 언어를 무료로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받기만 하는 건 좋지 않다고 반복해서 강조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소통의 한 희망을 발견한 듯 마음이 뿌듯해졌다. 그녀의 집 앞 골목에서 남편과 두 딸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옥상으로 올라가 두 딸에게 필리핀 전통 의상을 입혔다. 커다란 가방에 가득한 다문화 강의에 필요한 물건들에서 조지타의 열심히 느껴졌다. 천진하고 예쁜 두 딸 뒤로 10년차 한국인 김현정의 여정이 지는 저녁 햇살 앞에 차분하게 펼쳐지는 것 같았다.

이십년 후쯤에는 조지타의 딸들과 호앙의 배 안에 있는 아기가 그녀들이 통과한 공항을 통과하여 새로운 이주의 행렬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 다른 이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수많은 노마드들의 행렬 중에 그녀의 아이도 아시아로 유럽으로 아메리카로 아프리카로 그렇게 대륙을 횡단하며 혈통과 민족과 문화의 경계를 변화시키며 이동과 정주를 반복하리라는 유추도 해 본다.

“Translocated Woman-대륙을 횡단하는 여성” 은 거침없는 이주의 물결이 혈통과 민족과 문화의 경계를 변화시키고 있는 현실 속에서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40년을 정주한 작가의 시선으로 아시아 한 작은 땅으로부터 대륙과 바다를 횡단해 또 다른 아시아의 작은 땅 한국에 도착한 아시아 여성들의 이동을 추적한 것이다. 그것은 한 개인의 이주의 흔적이기도 할 것이며 동시에 국경을 넘는 모든 이주자들의 꿈과 고난의 여정이자 반복되는 노마드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때 중국과 멕시코 미국 브라질 등으로 삶의 터를 옮겨갔던 한국의 디아스포라들과 2012년 한국 땅으로 이주하는 수많은 입국자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꿈과 두려움과 고난과 힘의 원천을 생각한다. 낯선 땅에 떨어진 작은 씨앗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견디어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듯 이 여성들의 삶 속에도 강인하며 또한 아름다운 드라마가 쓰여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