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MIN LEE

이선민의 이주여성의 재현과 도큐멘타리의 역설적 가능성

문영민 (작가/비평)

영미권에서는 유색인종에 대해 “인식되는 소수자 visible minority”라는 용어를 쓰는데, 그 말은 본질적으로 모순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마치 유색인종이라는 단어가 백인의 피부색은 색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잘못된 용어이다. 소수자는 피부색의 차이 때문에 타자로서 “인식”된다. 또 한편으로는, 물론 구조적인 차별 때문이지만, 주류사회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색인종은 “invisible” 하다는 역설적인 표현을 쓴다. 그래서 “유색인종”은 긍정적 차원의 가시성과 인정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유색인종”은 이민 3세대가 되더라도 이주자로 오인되기 십상이다.

누구든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고 싶을까? 자진해서 떠나는 이들은 대개 모국에서 괴롭거나 고통스러운, 그래서 잊고 싶은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좀 더 큰 꿈과 희망을 품고, 더 나은 삶을 살아보고 싶은 욕망 때문일 것이다. 그 정도는 보편적으로 거의 모든 이주자가 공유하는 바 일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주의 경험은 대개 불확실하다는 것이며, 어떠한 면에서든지 상당한 위험 부담을 껴안아야 한다. 익숙한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른 조건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조건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나에게는 이선민의 작업 Translocating Women에서 보여지는, 급변하는 한국사회의 새로운 사회구성원들인 이주 여성들 역시“인식되는 소수자”로서 여겨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난 20여년간 한국사회에 차츰 자리잡은 민족적 다양성을 고려한다면 소수자 그룹은 이들 뿐만 아니다. 이선민이 이주 여성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작가가 오랫동안 가족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왔기 때문이다. 그는 이주 여성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들이 여기서 꾸려가는 ‘다문화 가족’의 모습과, 모성으로서의 여성들을 대면하고자 한다.

가족의 새로운 구성원을 대면하기

가족을 주제로 삼아 작업한지 13년째를 접어든 이선민의 작업은 작가 자신이 여성으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경험이 작업의 기초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작업이 자서전적인 것은 아니다. 초기작인 <황금투구>전에서 미시적 차원의 권력의 상징인 아버지에 대한 표상을 연극적 요소를 가미해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면, 이후 대표작인 <여자의 집> 연작에서는 자신의 결혼 후 또 다른 형태의 가부장제도에 편입되면서 여성으로서의 본인이 처한 부조리적인 상황을 재현하는데 천착한다. 암묵적으로 요구되는 여성에 대한 책임들, 즉 가사, 육아, 제사, 며느리의 역할 등을 수행해 나가는 일상 생활 속에서, 가족 구성원들의 공존 속의 미묘한 괴리감을 상호 시선의 비껴나아감을 통해 표현했다. <여자의 집>과 <도계프로젝트>에서 도시와 지방 등 여러 경제적 구조와 아파트 또는 한옥문화 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일관적으로 드러나는 전통적인 가부장제도의 현실을 재현한 반면, 그 이후 <트윈스> 연작에서는 작가 주변의 분당의 중산층 이상 계급의 엄마들이 자녀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상황을 포착함으로써 그들의 세속적 욕망을 표준화된 아파트 문화 속에서 가시화했다.

비평가 박평종은 이선민의 작업에서 보여지는 한국인 여성의 모습에 대해 “부계사회와 가부장주의 속의 여성의 지위, 경제력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주체적 삶을 포기하는 다반사의 상황”의 맥락에서 해석한다. Translocating Women을 통해 이선민은 이러한 한국인 여성의 상황을 이제 한국사회에 편입한, 캄보디아와 베트남 등으로부터 이주한 여성들의 상황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이번 작업은 이선민이 예전에 재현한 모성과는 상당히 다른 유형의 모성의 재현일 뿐만 아니라, 얼마전까지 훈육받았던 “단일민족 공동체”라는 신화의 붕괴 이후 새로운 사회/가족 구성원을 대면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선민은 결혼과 양육으로 인해 오래간 사진작업을 쉬다가 다시 카메라를 잡으면서 다음과 같이 다짐했다고 한다:“첫째, 손만 뻗으면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하며 둘째, 나 뿐만 아니라 사회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작업이어야 한다는 것.” 예전의 <여자의 집>, <트윈스> 등은 작가의 경험을 밑받침한 것 또는 본인이 처한 환경에서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접근 가능했으며 설득력 있었다. 하지만 캄보디아 이주 여성들은 손만 뻗으면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본인 말대로 정주자와 이주자로 설정되는 그들의 관계는 매우 복잡한 층위에서 거리감을 작동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벽을 극복하기 위해 이선민은 장기간에 걸쳐 여성들과 친구가 되기로 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이주여성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그들이 모국을 두고 떠나와 가정을 꾸리고 엄마가 될 수 있는 용기를 지녔다는 점, 즉 강인한 여성성과 모성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되었다. 이선민의 이러한 견해는 이산을 경험한 나에게는 다소 로맨틱하게 보이는 면이 없지 않지만, 작가의 유년기에 조부모 슬하에서 성장한 경험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강인한 모성에 대한 동경을 느끼는 듯하다. 이주여성들이 이곳에서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다는 사실, 즉 “이주한 엄마”가 된다는 사실에서 그들로부터 감동받으며, 그들과 일종의 동일성을 이루는 듯하다. 작가는 그들과 한동안 거리감을 두고 교류하던 중 언젠가 그들의 어린 아이를 받아 안고 볼에 얼굴을 대는 순간 이주여성 엄마들과 “처음으로 공감의 눈길”을 나누었다고 회상한다.

“이주한 엄마”와 강인한 모성

캄보디아의 국내총생산량은 한국의 십분의 일에 못미치며, 최근 꾸준히 급성장하는 경제성장율에도 불구하고 오랜 정치적 사회적 불안정 속에서 대다수 국민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많은 일반인들은 사회 구조적 문제 때문에 가난, 학대, 교육미비 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는 캄보디아 여성들 중에는 결혼보다는 한국 입국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국제결혼을 “가난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는 당사자도 있다. 결혼 당사자들은 결혼을 성사하는 과정에서 캄보디아와 한국 양측 정부의 구조적 방침의 부재 또는 미비로 말미암아 한국인 브로커들과 캄보디아 공무원들의 폭리, 부패, 횡포에 시달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결국 이주 여성들은 캄보디아라는 억압적 사회를 벗어나서 비교적 자유로운 삶과 향상된 삶의 질을 구가하며 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을 하는 이들도 많은 것 또한 사실이지만, 동시에 또 다른 억압적 기제 속으로 편입되기도 한다.

캄보디아 이주여성들이 비록 한국에 와서 자녀를 낳았다 할지라도 그들을 “이주한 엄마”라고 부르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을 듯 하다. 이러한 호칭을 논하는 이유는 아이들을 앉거나 등에 엎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미국인들의 모습을 담아낸 여러 사진가들의 도큐멘타리 작업들, 그중에서도 단연코 도로시아 랭 Dorothea Lange의 사진 “Migrant Mother”이 연상되기 떄문이다. 이 역사적인 이미지는 이선민의 최근작을 이해하는데 있어 실마리를 제공한다.

랭의 사진의 주인공인 플로렌스 톰슨Florence Thompson은 하나의 아이콘으로 작동한다. 랭은 톰슨의 이름이나 개인사적 서술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차에서 내려서 불과 15분만에 그녀을 발견해 촬영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애초에는 약간 먼 거리에서 톰슨과 그를 둘러싼 배고픈 아이들, 그리고 남루한 텐트를 배경으로 촬영한 뒤, 점차 거리를 좁혀서 그녀의 얼굴과 상체에 줌 인하여 촬영했다. 이 클로즈업 사진에서 톰슨에 바짝 붙어있는 부끄러운 듯한 아이들의 뒤통수가 보이지만, 랭은 배경을 배제함으로써 추상성을 강화시켜서 가난하지만 굳건한 모성의 이미지를 상징화했다. 즉 모녀라는 영원한 주제로 압축시키고, 그것을 대공황 그 자체를 맞서는 강인한 여성성과 모성이라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굳힌 것이다. 그의 사진은 열악한 삶의 조건을 견디어내는 모성을 신화화함으로써 20세기 사진 중 가장 많이 복제된 이미지들 중 하나로 등극한 것이다. 실제로 이 사진은 수많은 반복을 통해 복제되고 또는 변형되어 엄마와 아이들이라는 신화적 아이콘으로 차용되었다.

반면, 이선민의 작업은 1년간의 리서치 이후 2년간의 연대와 사귐을 통한 작업이다. 이선민이 재현한 이주 여성들은 그들 삶의 배경인 성남의 골목, 시장, 집안 등의 구체성 안에 위치한다. 그들과 가족들, 이사가는 날, 주말농장, 시장나들이, 그리고 무엇보다 친밀한 침실방의 모습까지, 특정한 개인들이 자신의 환경에 위치한 모습을 담고 있다. 집안의 모습을 담은 사진 중에는 어려웠던 시절의 가족 사진에 5만원권을 꼽아놓은 것에서 더 넉넉한 삶을 지향하는 보편적인 염원을 엿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이주민 여성들의 모습은 그들의 이주의 조건을 암시하는 지시성들로 가득 차 있다. 딸과 손주를 둘러보고 모국으로 돌아가는 모친이 챙겨가는 커다란 소포상자 등, 가정의 소품부터 여행의 편린까지 담은 사진들에서 경계를 넘어 경제와 삶의 얽힘의 증거물들을 제시한다.

고려해봐야 할 점은, 이러한 구체성은 랭의 사진이 보여주는 추상성과 보편성에 대비해 완연히 반대의 성격을 지닌다. 그런데 이선민은 캄보디아 여성들이 어린나이에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 남성과 결혼을 하기 위해 낯선 곳에 이주하고, 본국에 두고 온 가족에게도 도움을 주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강인한 어머니상을 본다는 점이다. 물론 이주여성들이 대공황 상황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한국에서 훨씬 안락하는 풍부한 물질생활을 구가할지라도, 랭의 사진에서와 마찬가지로 강인한 모성을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작가는 이주 여성들과의 친밀한 교류를 통해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랭의 경우처럼 구체성을 배제함으로써 획득한 강인한 모성이라는 신화적 상징성에 비해, 이선민의 경우처럼 구체성에 의존하면서도 역시 동일한 상징성을 얻을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보편성에 반대되는 구체성인데, 그가 구체성에서 보편성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사회계층이라는 맥락을 배제할 때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가능한 것인가? 여성주의자들에 의해 모성의 해체가 이미 이루어진 상황에서 다시 그것에 접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사회적 타자를 통해 우리가 소실한 ‘순수한 모성’에 대한 열망을 투사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또 한편으로는, 진지한 사회적 도큐멘타리를 점점 찾아보기 어려운 오늘, 타자와 연계된 작업에 내포되기 쉬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실천해야 하는 이와 같은 어렵고 진지한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사회적 도큐멘타리

도큐멘타리의 모순 또는 맹점은 사진가와 대상과의 관계가 여실히 드러낸다는 한계가 있으면서, 동시에 사진가의 의도는 반드시 올곧이 반영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사진은 진실을 그대로 담아낸다는 맹목적인 믿음이 와해된지 오래된 오늘, 사진가는 더 이상 순수한 ‘객관성,’ 심지어는 사진의‘지시성’ 조차도 고집할 수 없는 처지이다. 특히 사회적 도큐멘타리의 경우, 작가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타자의 모습을 재현한다고 해도 그들의 이미지가 관객에게 친숙하게 다가오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사회적 타자와 친숙한 교류를 경험한 적이 없는 주류의 관객에게 타자의 이미지를 형식적 원숙함을 통한 사진으로 보여줌으로써 사회적 타자가 더 친숙해지고 사회적 일원으로 인정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특히 주류 관객과 다른 사진 속의 그들의 침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사회적 타자는 자신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는 순간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있는가? 어쩌면 순박함 때문에 그것을 용인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자신의 사진이 유포됨으로써 본인에게 어떠한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허용하는 수도 있을 것이다. 이선민은 이러한 잠재적 문제를 인식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주 여성들을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주체로서 상정하고자 노력해왔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사진적 주체는, 관객의 무지 또는 애초의 사진촬영 당시의 맥락의 소실로 인하여, 그들의 주체성은 차츰 희석화되며, 오히려 관객이 투사하는 보편적인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된다는 점이다. 사회적 도큐멘타리의 이러한 경향을 예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선민의 이번 연작은 일반적인 사회적 도큐멘타리가 보여지는 대중매체가 아닌 사설 갤러리에서 보여지는 상황, 그리고 작가가 그의 사진적 주체들인 캄보디아 여성과 그의 가족들로부터 그들의 사진을 전시할 수 있도록 허락을 얻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전시에 초대되었다는 사실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선민은 리서치와 더불어 이주여성들과 인간적인 교류를 갖고자 노력해왔다. 그의 작업 방식은 도큐멘타리가 흔히들 취하는 방식, 즉 사회적 타자를 대상화하거나, 단순히 이주민 현상 등 주어진 상황을 사회적 문제로 고발하기 위한 도덕적 또는 정치적 일환으로 삼는 방식 또한 아니다. 이러한 방식의 문제로는 물론 사회적 타자들이 자신의 상황을 개척하는데 필요한 여건 또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판단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오히려, 이선민은 자신이 한국인 주류사회의 중산층 출신임을, 그리고 그의 사진적 주체들이 가난을 벗어나고 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고 낯선 곳으로 이주한 그들의 상황이 주는 너무나 큰 거리를 애초부터 인식하고, 그 관계의 한계를 인정하고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여러번의 교류를 통해 서로 편해지고 우정을 가꾸어 나간 상황에서 비로소 사진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선민의 사진에서 인물들은 사진적‘주체’로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그들의 삶의 열악함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비교적 풍요롭고 한가한 삶을 즐기는 여성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실제 한국 특유의 재래 시장이 주는 풋풋함과 넉넉함을 즐기는 모습이 역력하다. 즉, 이선민의 사진적 주체들은 한국사회의 특이한 현상이 초래한 다문화가정의 인물들을 그들의 계층적 배경의 희생자로서 설정하고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일반적인 생활을 향유하고 있으며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잠재력과 존엄성을 지닌 주체로서 재현되고 있다.

말,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공동체

근래의 한국의 영어교육 열풍에 말미암아 요즘 유학이나 이민가는 이들은 영어에 그다지 큰 불편이 없는 듯 보인다. 적어도 내가 30년전 이민을 떠날때 비행기에서 영어로 물 한잔 달라는 정도 밖에 못했던 것에 비하면 그렇게 보인다. 현지에서 외국어 습득에 대한 강박의 체험 탓인지, 한국에서 외국인이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면 놀랍기 그지없고, 그것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한국어를 어렵게 하는 외국인을 만날때 느끼는 아련한 공감대이다. 동시에,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한 이주민들에게는 한국어가 외국어로서 한국어, 즉 주류의 언어가 되었다는 사실에 나의 적응이 늦은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그들의 언어에 대한 어려움을 대면할 때 나는 그것을 몸으로 느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외국어로 생각을 혀에서 맺는 것의 어려움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몇 해전 이태원에서 겪었던, 아트 오프닝에 대해 궁금해서 도대체 무엇인지 입술을 떨면서 조심스럽게 내게 물어보던 한 아랍 남성, 그리고 성남에서 작가 이선민과 방문한 캄보디아인 젊은 여성 호앙이 구사한 한국어가 내 귀를 맴돈다. 그들의 눈과 머리와 마음과 혀가 동시에 움직이지 않는 것을 목격한다. 또는 그것이 비교적 원활하게 작용하지만 어딘가 유아적인 수준에 머물 때도 있다. 그들의 어설픈 한국어를 많은 한국인들은 그들의 지적 수준으로 등가해서 취급할 수도 있다. 사실 이주민들, 특히 한국에 온 이주 여성들은 한국어의 어려움 때문에 육아, 교육, 사교 활동 등에서 큰 제약과 불편을 겪는다. 이선민의 사진 속에서 렌즈를 응시하는 이들의 침묵과 어려움을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한국의 다문화주의와 관련한 현상들—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대한 정보, 분석 등은 매체나 사회학적 서적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으므로 여기서 반복 요약하고 싶지 않다. 다만, 여러 층위의 사회적 및 구조적 문제 및 특수한 과정을 통해 이주 여성들이 결혼을 통한 이민을 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진통이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이선민의 사진에 등장하는 이주 여성들은 그들 중 다행히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듯 한데, 추측컨데 그들의 반려자들의 성실함과 캄보디아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수반될 것이다. 이들의 모습을 기록한 이선민의 사진은 대중적인 시각문화에서 늘 접하는 서구중심적 이미지와 한국의 주류사회의 이미지에 대척하는 비주류의 이미지라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김용태와 강용석의 동두천 사진, 주명덕의 홀트 아동 사진 등의 극소수의 예외적 사례를 제외하고는, 한국 사회 속의 비주류 사회에 대한 이미지의 연구는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선민의 사진이 암시하는 바는, 급변하는 시대에 우리가 이들 이주 여성들을 사회적 타자로서 ‘포용’하고 ‘관용’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왜냐하면 관용이란 ‘우리’가 ‘그들’에게 베푸는 것이기 때문에, 즉 ‘다양성’을 ‘관리’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기 때문에—오히려 우리가 그들과 더불어 공존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선민의 작업은 타자와 공존하는 기회를 갖음을 통해서만 가능한 어려운 작업이다. 나누어보는 시간을 함께 경험함을 통해서만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친밀함은 ‘공동체’라는 복잡하며 역설적인 개념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친밀함이란 근본적으로 풀어낼 수 없는 양면성을 지닌 것이기 때문이다. 타자 없이는 ‘자신’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또한 타자와 완벽하게 동일화될 수도 없다. 타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근본적으로 불가피하지만, 궁극적으로 불가능한 윤리적 이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설적 실천은 가장 훌륭한 사례의 도큐멘타리도 본질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모순을 그대로 반영한다: 어떻게 하면 타자의 상황을 관측하면서도 작가의 시선을 드러낼 것인지, 타자를 노출할 수 밖에 없는 센세이셔널리즘과 기능주의라는 두 축 사이의 균형을 지켜낼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문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