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MIN LEE

가족과 모성의 연대기

이선민

1999년 9월 어느 날로 기억한다. 직장에 다녀와 9개월 된 딸을 보행기에 앉히고 거실에 카메라와 조명을 설치하였다. 보행기에 앉아있는 딸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과 다리미와 아이의 우유병과 키재기 포스터, 거실 액자 등을 가감 없이 카메라에 담았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30대 초반의 젊은 엄마였던 나는 결혼으로 인하여 새로이 부여받은 역할과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무척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스스로를 이해시킬 논리와 공감대가 필요했고 그렇게 카메라와 조명을 메고 친구들의 집을 방문하기 시작하였다.

<리빙룸, 1999>이라는 그룹전을 시작으로 아이와 엄마의 거실에서의 일상을 조명하는 작업은 2년여 간 계속되었다. 나는 이 작업을 <여자의 집>이라 명명하고 한 달에 한두 번 남편이 쉬는 일요일에 엄마가 아닌 작가가 되어 친구들의 거실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나의 일상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엄마가 된 친구들이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거리를 유지하며 담담히 바라보았다. 아이를 향한 모성적 사랑과 가사 노동에 지친 뒷모습과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 아이가 잠든 후의 공허함, 고립감, 외로움 등 2년여의 촬영을 진행하며 나는 그렇게 엄마라는 정체성에 조금씩 익숙해져 갔고 어렴풋이 모성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간의 <여자의 집Ⅰ> 작업이 30대 초반의 젊은 엄마들의 정체성을 묻는 작업이었다면, 2004년부터의 <여자의 집Ⅱ> 작업은 3세대 이상이 모이는 제사, 명절과 같은 한국의 가부장적인 가족 문화와 이들의 내면을 좀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보았다. 부모님 세대와 나와 형제 세대, 그리고 자녀 세대 등 최소한 3세대 이상이 모여는 명절 기간 동안 이들 대가족이 오랜만에 만나 식사하고 제사 드리는 외양적 풍경과 함께 이들 내면의 심리 상태를 시선의 방향과 교차를 통하여 은유한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견고한 유교의 가부장적 가족 구조에 막 편입된 사진가는 여전히 가부장적 가족문화가 견고한 의성과 양양, 청양 등의 지방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명제에 대하여 공시적으로 관찰해보기로 하였다.

<여자의 집Ⅱ, 2004> 개인전을 마친 후 나는 당시 내가 살고 있던 분당 지역에서 엄마와 딸의 포트레잇 작업을 2년간 진행하였다. 엄마와 딸의 관계와 욕망을 조명한 <트윈스Ⅰ, 2006> 작업은 비교적 평준화된 중산층 신도시 ‘분당’ 지역에서 아직 아이의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은 6살 정도부터 11살 정도 연령대의 여자 아이와 엄마의 커플 사진을 아이의 방을 배경으로 촬영한 것이다. 이 작업은 <여자의 집> 작업 당시 9개월이었던 내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새로이 관계를 맺게 된 학부형들과의 만남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되었다. 제목인 'Twins'란 물리적 쌍둥이가 아니라 엄마의 욕망이 딸에게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심리적 쌍둥이의 상태를 지칭한다. <트윈스Ⅰ> 작업은 아이가 입고 있는 꽃무늬 원피스와 발레복, 레이스 드리운 커튼과 샹들레에, 책 장 가득한 교육용 책자와 인형과 구두 등 아이와 아이의 방에 투영된 엄마인 여성의 욕망을 화면 안에 자세히 캡쳐한다. 가부장적인 가족 구조 안에서 약자였던 엄마이자 며느리인 여성들은 <트윈스Ⅰ>의 작업 공간 안에서는 다분히 권력적이며 주체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 나는 심리적 쌍둥이가 되어있는 이들 모녀와 아이들의 방을 밝은 조명과 대형 카메라를 사용하여 이 욕망의 기호들을 하나하나 면밀히 응시하였다. 나의 딸 자윤은 9살, 작가인 나는 38살 때이다.

2008년 <트윈스> 시리즈는 엄마와 딸에만 머물던 시선을 아빠와 아들에게도 확장하고 집을 벗어나 산과 들, 넓은 자연으로 공간적 배경을 이동하여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자전거를 싣고 바닷가 앞에 선 아빠와 아들, 동이 트는 바위산에서의 엄마와 딸, 모닥불 앞에서 기타를 들고 포즈를 취한 부자. <트윈스 Ⅱ, 2011>는 아이의 방에 비추인 욕망을 뒤로 하고 부모들이 20대였을 때 누렸던 대자연과 고상한 취미 등을 부모가 되어 아이와 함께 하는 여정을 촬영한 작업이다. 4년여 간 전국의 산과 바다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하며 부모들의젊은 시절 향수를 소환하고 자녀와 함께 누리는 낭만적인 모습과 함께 그 이면에 자리한 취향과 취미마저도 유전하고자 하는 부모들의 계급화된 욕망을 서술한다. 2011년 <TwinsⅡ> 개인전을 열 때 어느덧 나의 딸은 14살이 되어 중학교에 입학하였고, 사진 속 둘째 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으로 아빠와 자전거 여행을 하며 트윈스의 모델로 포즈를 취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사진과 나와 내 아이들은 함께 성장하고 함께 꿈꾸고 있었다.

2012년 트윈스 작업을 마무리하고 다음 작업을 구상하던 중 우연히 내가 거주하는 분당 지역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성남 태평동 지역에서 캄보디아로부터 이주하여 한국에서 가정을 이룬 호앙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그녀는 18살의 앳된 소녀였고 출산을 한 달 앞두고 있는 임산부였다. 나는 2년간 호앙과 그녀의 친구들을 만나며 이들의 한국에서의 일상과 엄마로서의 성장을 지켜보았다. 국적과 나이와 경제적 수준 등 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대륙을 횡단하여 이주한 이들과 내가 2년여 간 사진적 교제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결혼 후 가부장제에 편입되었을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나의 경험과 아이를 낳고 키운 모성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20여 년 전 나는 엄마라는 정체성과 낯설었던 남편의 가족들과 가부장적 가족 문화 등 결혼 이 후 심리적으로 다소 과격한 이주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나는 나의 이 심리적 이주의 경험과 캄보디아로부터의 물리적 이주 2가지의 상황을 동시에 직면한 호앙과 그녀의 친구들에게 <여자의 집> 작업 중 나와 친구들에게 하였던 ‘가족이란, 모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 작업을 <Translocating Women>이라 명명하였다. <Translocating Women, 2013> 개인전 이 후 5년이 지났다. 이제 호앙은 한국말이 제법 유창해졌고 곧 그녀의 아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많은 변화들이 그녀에게 있었지만 그녀의 모성은 이 변화와 갈등을 수용하며 엄마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것이 호앙과 내가 첫 만남 이후 지금까지 7년여 동안 교제를 이어가는 동력일 것이다.

앞서 <트윈스Ⅰ, Ⅱ>작업이 작업의 배경을 순차적으로 집 안에서 집 밖으로 이동하였다면 <도계 프로젝트, 2007> 작업은 3년 동안 집이라는 공간의 안과 밖에서 다각적이고 공시적인 관점을 견지하며 가부장적 가족 문화와 그 구성원들의 일상을 추적하였다. 이런 차원에서 <도계 프로젝트>작업은 집 안에서의 가족 풍경을 담은 <여자의 집Ⅰ,Ⅱ>의 연장선에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다각적이며 공시적인 접근은 도계 지역 가족의 방과 마당, 선산과 일터 등지에서 이들의 안과 밖의 일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도계’ 지역은 1960년대부터 한국의 근대화의 번영을 견인한 탄광도시이다. 지금은 경동광업소 한 개만이 남은 쇠락한 도시이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뒤를 이어 광부가 된 원주민 가족들이 주류를 이루어 살고 있는 도시이다. 나는 이 도계 지역에서 광부로 일했던 아버지와 그의 2세대 3세대 가족들이 모이는 집 안에서의 명절 풍경과 강원도의 수려한 산들을 배경으로 한 집 밖에서의 성묘와 벌초, 광업소 풍경 등을 동시에 추적하였다. 대가족들의 질서정연한 기념 촬영에서부터 예전에는 가족들로 시끌벅적했을 작은 방에 이제는 노부부 둘 만이 마주앉아 있는 모습, 조상의 묘지를 방문한 가족들의 성묘와 벌초 풍경, 광산 도시 도계의 마지막 탄광인 경동 광업소 풍경 등 도계 지역의 안과 밖에서 이들 가족들의 다양한 일상의 면모들을 목격하였다. 특별히 작업을 진행하며 사진가의 의식을 크게 뒤흔든 만남이 있었다. <도계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2년여 째 어느 날 도계공동묘지에서 남편의 묘지에 벌초를 하러온 고령의 할머니와 그 가족들을 만나 촬영을 진행하게 되었다. 80세가 훨씬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남편의 묘지를 배경으로 포우즈를 취하였다. 남편의 묘지를 쓰다듬는 할머니의 손길과 묘지를 배경으로 지팡이를 의지하여 카메라를 응시하는 할머니의 모습에는 기존 <여자의 집> 작업을 압도하던 가부장제의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남성인지 여성인지 잘 분간이 안가는 이 쇠잔한 할머니의 모습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가부장제의 수직적 분류를 망각케 하며 삶과 죽음의 수평적 명제를 강렬하게 선포하는 것 같았다. 묘지 뒤에 서있는 가족들 또한 죽음을 넘어 이어지고 있는 삶과 죽음의 연대를 확증하듯 경건하게 일렬로 서 있었다. 모성의 정체성과 가부장적 가족 구조에 집중하여 10여년을 작업했던 사진가에게 이 날의 로케이션은 제도와 구조를 압도하는 죽음의 실존과 이 죽음까지 아우르는 현연하는 연대감의 실체를 질문하게 하였다. 동시에 이 질문은 안과 밖, 가정과 일터 등 가족 구조의 내면과 외면을 함께 바라볼 것을 요청하였고 이것이 가정의 밖에서 경제를 담당하는 일터에서의 광부들의 모습을 기록한 <도계의 광부들, 2007>의 작업 동력이 되기도 한 것이다.

도계에서의 작업 이후로 10여년이 지났고 나는 50대에 들어섰다. 요즈음에야 집 안에서와 집 밖이나 일터에서의 모습을 분리하지 않고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가족이라는 구조를 넘어서 삶의 여정을 편견 없이 통합적으로 바라볼 내공이 사진가에게 생긴 것이다. 이는 또 어쩌면 모든 사람들에게 예외 없는 죽음이라는 무겁고도 근본적인 문제가 가부장제라는 견고한 제도를 압도하는 명제라는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나이에 가까워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첫 개인전 <황금투구, 1995> 전시 이 후 나는 8년 만에 <여자의 집, 2004> 개인전을 가졌다. 손만 뻗으면 진정성을 담보할 수 사진적 대상과 10년간 긴 호흡으로 작업하여도 내용이 고갈되지 않으며 사회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주제로 작업을 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카메라를 다시 잡은 지 6년여만의 결과였다. 가족과 모성이라는 주제는 작가로서의 진정성과 육아를 감당하는 엄마로서의 현실을 양 손에 쥔 나름의 최선의 선택이었고 어찌 보면 견고한 한국의 가부장적 가족문화에 편입된 한 여성 작가의 생존을 위한 필연적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자의 집 작업을 시작하며 했던 “나는 어디에 있나(Where am I)?”라는 질문은 어쩌면 가부장제의 그림자로 존재감을 박탈당한 한 여성의 “나 여기 있어(I am here)”라는 작은 외침과 같은 맥락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 속 보행기에 앉아있던 9개월 딸아이는 지금 21살의 대학생이 되었고 추석 때 아빠 무릎에 안겨 카메라를 응시하던 3살 아들은 아빠보다 키가 훌쩍 커버렸다. 작가인 나 역시 한국의 가족 문화와 구성원의 정체성에 대하여 질문하며 사진 속 가족들의 삶을 통하여 위로받고 때론 분노하고 연대하며 그렇게 사진과 함께 성장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15년 동안 <여자의 집>과 <트윈스>,<Translocating Women>,<도계 프로젝트> 등 한국의 가족과 모성을 여성의 시각으로 조망하였던 일련의 작업들은 작가인 나 자신의 자전적 성장일기인 동시에 가부장적인 한국의 가족 구조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질문하는 동시대 한국 여성들의 연대기적 자화상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또 모성을 담보한 여성으로서 카메라를 통하여 조우했던 인물들은 지금도 삶과 죽음의 연장선에서 엄마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견고한 제도와 구조에 직면하고 변화를 감당하며 삶과 죽음의 연대를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공통의 사명이 여성과 가족을 주제로 한 20여 년 동안의 작업들을 견인한 동력이자 풀어야할 숙제였을지도 모르겠다. 또 앞으로의 10년, 작가로서 또 모성을 담보한 여성으로서 또 죽음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으로서 나는 <여자의 집> 작업을 시작할 때 던졌던 이 질문과 대답을 계속할 것이다. “Where am I?” “I am here"

From my Artist’s Note 1995-2013

황금투구 1995-1996: 나는 권력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나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나의 유년과 청년 시절 4.19 혁명과 군부독재와 광주 민주화 운동 등 굵직한 한국 현대사의 사건들이 일어났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세상 그 어떤 권력보다 커다랗게 존재했던 그 권력의 실체에 대하여 이제 질문해 보려 한다. 1995년 26살, <황금투구> 작업을 시작하며.

리빙룸 1999: 캐비넷 속 제법 먼지 쌓인 카메라를 오랜만에 꺼내 든다. 첫 개인전 <황금투구, 1996> 이후 3년만이다. 손만 뻗으면 다가갈 수 있는 사진적 대상, 늘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주제, 10년간 지속하여도 고갈되지 않으며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그런 작업을 하고 싶다. 1998년 8월 31일 녹음방초분기탱천 전시 공모를 준비하며.

여자의 집Ⅰ 1998-2004: 가만히 방 안을 들여다본다. 왠지 모를 낯설음. 눈을 감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어디에 있나... 1996년 11월 30일. 나의 결혼식 날이다. 폭설이 쏟아지고 무척 추운 날이었다. 이 날 이후로 나는 새로운 정체성과 제도와 문화에 직면하였다. 나고 자란 땅을 한 번도 떠난 적 없었던 29살의 여성이 당면한 이 낯선 상황을 나는 심리적인 이주라 정의하고 이를 친구들의 거실을 방문해 찬찬히 관찰해보기로 하였다. 1999년 6월. 자윤과 자화상을 찍으며. 평창동 삼성 아파트

여자의 집Ⅱ 2004: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이들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본다. 이들의 시선이 만나는 지점은 어디일까? 여자의 집은 묻고 또 묻는다. 남편의 고향은 충청남도 청양이다. 나는 결혼을 앞두고 남편의 가족들과 인사를 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남편의 고향을 방문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깊은 골짜기를 한참을 들어가 소도시의 작은 읍내에 당도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이 곳은 그냥 시골이었고 내가 엄청 촌으로 시집을 가네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후로 나는 1년에 3, 4번 아이들을 카시트에 태우고 6, 7시간씩 막히는 길을 우는 아이들을 안고 달래며 시댁을 방문하는 일을 매년 반복하였다. 결혼한 지 7년이 다 되어가는 어느 추석 명절에 나는 아이들과 시댁에서 몇 칠 묵을 짐을 차에 실으며 조명과 카메라도 함께 트렁크에 실었다. <여자의 집Ⅱ> 작업이 시작되었다. 2004년 10월 추석 어느 날.

트윈스Ⅰ 2005-2006: 문득 아이의 방을 본다. 나를 꼭 닮은 나의 욕망이 숨 쉬는 방. 시선을 가다듬고 천천히…그 방을 다시 응시해 본다. 2005년 첫째 딸 자윤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나는 5살이었던 동생 성우를 데리고 딸의 친구들과 학부모 모임에 나가 자주 그들과 교제했다. 이들과 나눈 대화의 대부분은 딸의 학업 일정과 아이의 옷과 애완견, 방의 인테리어 등에 관한 신변잡기적인 대화였다. 나는 아이가 입고 있는 옷을 통하여 엄마인 그 여성의 취향을 파악했고 아이의 방을 보며 그녀의 욕망을 읽을 수 있었다. 2005년 8월 6일 아이와 커플옷을 가지고 있다는 모녀와 레이스 커튼이 드리워진 딸의 방에서 모녀의 커플사진을 촬영했다. 방 안에 있던 딸의 물건들과 함께. 2005년 8월 6일. 태화와 희주 <트윈스> 첫 촬영을 시작하며.

트윈스Ⅱ 2007-2011: 모두 잠 든 늦은 밤이었다. 문득 이제 11살이 된 딸과 함께 내가 젊은 시절 자주 올랐던 지리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방에 비추인 욕망과 반복되는 일상을 뒤로 하고 20대의 내가 벅차게 마주하였던 대자연 속에서 아이와 함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장엄한 대자연의 풍경을 바라보고 싶다. <트윈스Ⅱ>의 새로운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007년 10월 18일 <트윈스Ⅱ> 작업 구상 중.

도계 프로젝트 2005-2007 : 장식장 가득한 가족의 사진들, 어머니의 무덤 앞에 서 있는 백발의 노인, 세월이 스며있는 이들의 방과 죽음을 넘어 이어지는 가족의 연대감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1995년 지인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도계를 처음 방문했었다. 성묘와 벌초 풍경을 촬영하기 위하여 10년 만에 다시 찾은 도계는 쓸쓸함이 감도는 여전히 무채색 그대로의 탄광 도시였다. 산이 많은 강원도의 깊은 산 중. 미리 벌초를 해놓은 조상의 묘에 추석에 모인 가족들이 음식을 싸들고 성묘에 오른다. 먼저 간 남편의 묘지를 쓰다듬는 할머니의 손길과 아버지의 묘지를 벌초하는 아들의 행위에는 삶만큼이나 선명한 죽음의 실존이 배어있었다. 가을 햇살이 유난히 눈부셨던 청명한 추석 어느 날이었다. 2005년 9월 18일 추석. 도계 공동묘지에서

도계의 광부들 2005-2007: 오전 8시 경동 광업소 선탄장 앞. 안개 머금은 쌀쌀한 공기가 이 곳이 오지 중의 오지 강원도의 깊은 산 중임을 알려주는 듯하다. 삼삼오오 일터로 향하는 광부들의 행렬에 노부부의 장식장에 있었던 사진의 주인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아빠이고 엄마일 이들이 서 있는 곳은 광부였던 그들의 아버지가 밟았던 바로 그 곳, 검은산 검은땅이다. 2006년 5월 8일 경동광업소 로케이션 중

대륙을 횡단하는 여성들 2011-2013: 보물을 찾아 떠나는 주인공, 결말이 좋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기 위한 주인공들의 몸부림,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결투, 갈림길과 결정적 선택, 불을 뿜는 용…이런 요소들은 많은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과 옛이야기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사용되어지고 전해져 왔던 것들이다. 2011년 성남 태평동에서 18세 소녀 호앙을 처음 만난 날 호앙은 나에게 캄보디아로부터 가져왔다는 그녀의 소지품을 보여주었다. 대륙을 횡단하여 결혼을 감행한 자의 소지품치곤 너무나 단출하여 놀라웠다. 비행기 티켓에 또박또박 한국에서 유일하게 알고 있는 남편의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그 숫자 한 자 한 자에 절박했던 그녀의 심정이 전해지는 듯 했다. 2012년 5월 12일. 호앙과의 첫 만남. 성남 태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