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MIN LEE

을지로의 낮과 밤

이선민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전시를 마치고 서울 중심가에 있는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작업의 모델이었던 노년 세대들과 그 건축된 역사가 비슷한 몇 몇 오래된 건물들을 방문하였다. 낙원 상가, 세운상가, 대림상가 등 종로와 청계천, 을지로 일대를 역사 탐방 하듯 천천히 거닐며 오래된 건축물을 바라보고 음미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기하게도 서울 도심의 스카이라인은 여러 번의 재개발로 고층화되고 현대화 되었지만 내가 방문한 건물들은 시간이 빗겨간 듯 처음 지어진 그대로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순간 발걸음을 멈추고 여러 생각에 빠져들게 된 한 지점이 있었는데 이 순간이 이번 <아버지의 시대로부터Ⅱ-을지로의 낮과 밤> 작업의 모티브가 되었다.

비가 온 다음날이라 종로에서 저 멀리 북한산까지 선명히 보이던 주말 새벽, 카메라를 들고 몇 년 전 세운상가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종로에서 을지로까지 연결된 지상가도를 따라 걸었다. 이 날 이 곳을 방문한 이유는 <아버지의 시대로부터>작업의 모델들과 건축된 연도가 비슷한 오래된 건물들을 촬영하고 이 곳에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년 세대 장인들과의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목적을 가지고 사전에 리서치한대로 오래된 건물의 아우라를 상상하고 방문한 이 곳은 작가의 고정관념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선사하였다. 일단 도시 한가운데에 이렇게 정서적인 길이 있나 싶게 종로로부터 을지로까지 이어진 지상가도는 서울을 만끽하기에 너무나 훌륭한 명소로서 손색이 없었다. 이 길을 걸으며 저 멀리 인왕산과 북한산,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감상하며 지상가도의 끝 지점 을지로 세운대림상가에 다다랐을 즈음 사진가의 마음은 당혹감과 복잡함에 사로잡혔다.

지상가도의 끝 지점 을지로 세운대림상가를 중심으로 펼쳐진 다양한 풍경은 여러 메시지를 동시에 또 다각적으로 전하고 있었다. 철거를 앞 둔 건물인지 간판이 떨어지고 황폐된 건물과 거푸집에 싸여진 건물들은 영락없는 재개발과 철거를 알리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 면해있는 세운대림상가에는 수많은 전자 가전 상가들이 주말 장사를 시작하며 셔터를 올리며 두런두런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세운대림상가의 반대쪽으로는 오래된 지붕과 저층 건물들이 모여 1950년대인가 싶게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지상가도에서 영업 중인 상가에는 세상 힙한 카페의 간판과 재기발랄한 메뉴가 돋보이는 음식점과 이색적인 공방 등이 오래 전부터 세운상가에서 장사를 해왔던 전자 및 공구 부품 가게들과 나란히 줄지어 배치되어 이 을지로 일대가 사진가에게 보여진 혼란스러운 입력에 또 하나의 새로움을 더하였다. 이 혼재된 풍경들은 자연스럽게 이 곳에서 공존하는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사진가는 세운상가에서 내려다 보았던 시간이 멈춘 듯한 이 금속제조 골목에 일주일간 작업실을 차리고 이 을지로 금속 골목과 세운대림상가에서 마주친 다양한 연령대와 직종의 인물들에게 이들이 을지로에 온 이유에 대하여 들어보기로 하였다.

제일 처음 만난 인물은 5년 전쯤부터 이 곳 금속제조 사장님들과 마을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30대 예술가 그룹의 멤버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소개로 이 골목 1층에서 금속제조일을 하고 있는 50대의 제조업자 몇 분을 만났다. 어느 하루는 아침부터 밤까지 이 을지로 금속제조골목을 방문한 20-30대의 청년들을 만났고 이들의 발걸음을 따라 건물을 올라가자 슴겨진 듯 성업 중인 갤러리와 케이크샵, 와인바, 공방을 운영하는 청장년 세대들을 만났다. 또 지하에 갤러리를 리모델링하고 있는 70대 건물주와의 만남도 가졌고 마지막으로 세운대림상가 일대는 눈감고도 다닐 수 있다는 고 백남준 작품의 기술 엔지니어 이정성 선생님과의 만남을 가졌다.

나는 이 을지로 산림동 골목에서 7일간의 낮과 밤을 목격하며 이곳에 차린 임시 작업실로 이들을 초청해 이들이 을지로를 찾은 이유와 이 곳에 대한 느낌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인터뷰하고 이것을 사진 위에 글로 쓰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사진 위에 직접 자신의 네러티브를 써내려갔고 어떤 이들의 네러티브는 남모르는 다른 사람의 손으로 대필되어 사진 위에 서술되어졌다. 이들의 네러티브는 때론 긴 서사로 채워졌고 간단한 소회로 은유되기도 하였다. 한 가지 인상적인 발견은 생전 처음 이 을지로에서 잠시동안 만났던 이들이지만 이들의 네러티브를 듣고 사진 위에 구성하며 대필하는 행위와 시간을 통해서 이들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생성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사진가인 나 역시 이 금속제조공장에 첫 발을 딛었을 때 금속 가는 날카로운 소리와 특이한 용접 냄새가 당혹스러웠다. 익숙한 듯 외면해 버리는 골목 1층 금속제조업자들의 시선도 내심 이들과의 분리를 자극하며 불편한 마음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무채색의 이 금속제조골목을 방문한 젊고 힙한 청년들과 그들의 발랄한 옷 색깔들도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이질감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일주일간 이 곳에 작업실을 열고 이들과 인물사진을 찍고 이들의 네러티브를 듣고 대필하면서 이 다양한 연령과 직종의 인물들이 이해되고 연결되기 시작하는 경험을 한 것이다.

좁은 골목에 물건들을 싣고 내리는 트럭과 오토바이, 오가는 사람들과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 금속제조업자들의 뒷모습과 금속 가는 소리와 용접 냄새로 북적이던 산림동 금속제조 골목은 밤이 되면 예술가들이 그린 형형색색의 셔터가 내려지고 삼삼오오 카페와 와인바를 찾는 청년들의 모습이 포착된다. 이렇듯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어 밤이 되어도 스러지지 않는 을지로의 낮과 밤, 이 곳에서 공존하는 다양한 네러티브가 이번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Ⅱ>작업의 내용이자 아버지의 시대를 넘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시대에 던지는 질문이다. 을지로를 방문한 어떤 청년은 기분 좋은 이질감과 어울림이라는 표현으로 다양한 직종과 세대들의 공존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을지로를 강추한다고 말했고 주문한 케이크를 찾으러왔던 23살의 대학생은 처음에는 소리와 냄새가 이상하고 일하는 아저씨들이 무섭게 느껴졌는데 한참을 바라보니까 아저씨들의 얼굴에서 순수한 웃음을 발견했다고 서술했다. 을지로에서 30년을 일한 50대의 금속제조 공장장은 이 곳에 놀러온 청년들을 보면 일단 부럽고 이들의 이런 누림은 우리의 노동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라는 표현을 했다. 15살 때 상경하여 이 곳에서 유리와 스텐 관련 일을 40년 넘게 했던 어떤 사장님은 이 곳이 철거되면 이젠 일을 그만두고 전원생활을 하며 편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운대림상가에서 만난 노년의 아트마스터는 자신의 기술을 아무 댓가 없이 후배들에게 전수하더라도 자신이 제작한 백남준 선생님의 작품이 영원하길 바란다는 바램을 피력했다.

이번에 을지로에서 만난 모델들의 대부분은 얼굴을 반 이상 가린 마스크를 쓰고 카메라 앞에서 포우즈를 취하였다.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시대로부터Ⅱ-을지로의 낮과 밤>작업은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더믹에 직면한 언택트 시대의 한복판에서 이 부재한 소통을 예술이 어떻게 모색해 갈지를 고민하게 하였고 이 고민은 이번 전시의 내용과 디스플레이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었다. 전시장 1층에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에 출생한 노년의 연금술사들의 사진이 걸렸고, 2층에는 을지로에서 만난 다양한 나이와 직종의 청년과 중장년들의 사진과 글이, 그리고 전시장의 마지막 지점에는 을지로에서처럼 카메라와 프린터와 책들이 꽂인 작가의 작업실이 설치되었다. 이 전시장 한 켠의 작업실에서 관객들은 사진가와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의 앞모습과 뒷모습, 손과 발을 촬영하였다. 그리고 흑백으로 프린트된 자신의 사진 위에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서술하였다. ‘아버지‘라는 동일한 키워드를 향하여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다양한 세대의 초상과 서사가 촘촘히 전시장 한 벽을 채우며 이번 전시의 마지막을 마무리한다. 이들의 앞 뒷모습과 다리와 손등, 그리고 이들 뒤에 펼쳐진 벽면들에는 문신처럼 혹은 가시처럼 그리움과 애증이 담긴 텍스트들이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 소멸을 서술한다. 부분 부분 제한적인 개인의 서사는 옆에 걸린 다른 이들의 서사를 견주며 고심 끝에 원하는 지점에 핀업되었다. 대화와 접촉이 제한된 시대. 관객들이 이들의 사진에 가까이 다가가 이 사적인 네러티브들을 천천히 읽고 소통할 때 이 개인의 네러티브는 시대의 네러티브로 완성될 것이다.

이렇듯 작가와 모델 모두 마스크를 쓰고 진행한 을지로와 전시장에서의 작업과 관객들이 전시장에 걸려진 사진들을 바라보고 이 곳에서 사진을 찍고 글을 써내려간 시간들은 온통 침묵의 시간들이다. 나는 이 시간들을 ’침묵의 소통‘이라 명명하려 한다. 그리고 이것이 이번 <아버지의 시대로보터 Ⅱ-을지로의 낮과 밤>전시가 제안하는 언택트 시대에 있어서의 소통의 방법이자 시대를 은유하고 치유하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담론이다. 동시에 아버지라는 키워드를 향하여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전시장 한 면을 채운 수많은 이들과 이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우리 시대가 한 방향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공통선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